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_ 소리의 뼈, 기형도
전 직장에서는 매주 월요일 10시에 팀회의를 했다. 리서치팀 팀장은 소통에 열정적이었다. 업무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나 개선사항부터 주말에 뭐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나 다른 팀원들은 필요한 업무 보고만 하고서는 핸드폰으로 이내 시선을 돌렸다. 처음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퇴사를 할 때 쯤에는 나보다 먼저 입사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답은 간단하다. 말해도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다.
어떤 회사는 직원을 침묵시킨다. 반면 리턴제로는 인터뷰부터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라이브 코딩 테스트에서 아서는 내가 막힌 부분에서 묵묵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후후, 그 코드가 과연 그렇게 될까요? 정말로요?” 테스트가 끝나고 잔뜩 흥분해서 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이런 사람이 일하는 곳이라면 정말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최종 인터뷰에서 대표인 아크에게 물었다. “아크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이에 아크는 말했다. “그냥 아크라고 불러주시면 돼요.”신이나서 물어보고 싶은 걸 잔뜩잔뜩 물어봤다. 이직을 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던 비전공자이자 커리어가 짧다는 내 위크포인트도 먼저 밝혔다. 아크와 케이는 담담하게 그리고 진정성있게 대답해줬다.
지난 3개월 동안 리턴제로에서의 소통량은 전 회사의 것보다 2.7배 정도 된다. 첫 달은 음성 구간 추출을 서빙 모델로 오토레이블링하여 정확도를 높이는 태스크를 진행했다. 처음엔 전 회사에서 하던 것처럼 선업무 -> 후보고 프로세스로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리뷰어였던 시몬은 내게 계속 질문을 했다. 아시안 퀴진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그는 내게 태스크의 방향성과 앞으로의 지향점을 물었다. 시몬은 나보다 연차도 높고 시니어지만 내게 보고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나와 논의를 하고 있었다. 시몬은 특이하게도 일 얘기를 하지 않을 때만 사투리를 쓴다.
두 번째 달에는 리서치팀 워크샵이 있었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과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각자 아이디어를 프로포즈하는 자리였다. 호텔룸에 모여 한명씩 피티를 진행했다. ‘더 좋은 서비스를 위해서’라는 전제조건 위에서 여러 아이디어가 제시됐다. 루카스는 리턴제로의 사업 방향성과 서비스 관점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를 먼저 정의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시나리오와 기준을 놓고서 이야기했다. 워크샵을 통해 하반기 프로젝트가 선정됐고 이에 따라 리서치팀은 기존에 유지하던 기능조직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 기조를 바꿨다. 연구와 기획 그리고 팀으로서의 운영 방식을 자유롭게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하면서 조금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3개월 차 현재는 전사된 텍스트의 화행을 분류하는 모델 개발 프로젝트에 팀원으로서 테스트 데이터 제작을 맡았다. 레퍼런스가 부족한 분야기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부터 어노테이션 기준을 잡는 것까지 처음부터 진행해야 했다. 어려운 일이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댄과 피어스와 데이터를 놓고서 씨름했다. B2B팀의 마이클에게 몇 번이나 피드백을 요청하면서 기준을 잡아나갔다.
한 번은 피어스가 빌드한 코드가 내 로컬에서 작동하지 않아 몇 시간을 소요한 적이 있었는데, 피어스가 막히는 게 생기면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했다. 댄의 말에 따르면 도움을 요청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혼자서 시간을 쏟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맞는 말, 맞는 말. 협업을 하려면 열심히 말을 해야한다. 리서치 엔지니어로서의 가장 큰 기쁨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다. 리턴제로에는 매우매우매우 복잡한 문제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리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있다. 매우매우매우 복잡한 문제는 절대 혼자서 풀 수 없다.
나의 말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더 많은 사람이 입을 열어야 솔직하고 편향되지 않은 의견을 공유할 수 있다. 리턴제로에서 “Over Communication”을 명시적으로 지향하는 이유다. 회의에 독선자가 없고 모두의 의견은 존중 받는다.
슬랙에서 가장 대화량이 많은 team-아이코 채널
리턴제로는 시끌벅적하다. 클라팀의 라모스와 하워드는 단백질 흡수량과 후면 삼각근에 대해서 열띤 대화를 하고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돌 뮤비를 틀어놓으면 댄이 성수에 엔터테인먼트 사옥이 있다고 말하니 아폴로는 그런 걸 어떻게 아냐며 놀란다. 나르는 AICO 프로젝트와 회사에 대한 의견을 날 것 그대로 노션에 다 적는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말을 한다. 나도 열심히 말해야겠다.
